파이콘 APAC 2016 후기

파이콘 APAC 2016 후기

부산에서 진행되는 대부분의 프로젝트에선 Pyhon(이하 파이썬)이나 'Ruby'등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없다?드뭅니다. 부산은 자바, PHP, 핵발전소 성애자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런 고급진 환경에도 불구하고 Ruby on RailsPython을 사용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몰래히키코모리 개발 업무를 진행합니다. 따라서 개발에 필요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모임이나 커뮤니티에 참석하는건 개인적인 커리어덕질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이벤트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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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파이콘 준비위원회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확인하고 100% 안될꺼라는 느낌같은 확답을 가지고신청하였습니다. 마음속으론 파이콘 홈페이지 유지보수라도 해볼까 했는데, 난 ~~말로만 듣던 '장.알.못'~~플라스크 사용자이기 때문에 일단 신청은 했으나 큰 기대는 접었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준비위원회에 참여한다는건 물리적으로 무리가 있기 때문에 큰 욕심은 없었습니다. 파이콘 행사가 즐겁고 재미있길 기대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파이콘 행사에 관련된 내용을 계속해서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스크립트를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특정 기업에서 진행되는 행사가 아닌 순수 커뮤니티에서 진행되는 모임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잡다한 일이나 참여를 독려하는 이벤트가 있을꺼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페이스북의 '커뮤니티', '페이지', '홈페이지'등 거의 웬만한 곳에 모니터링 시작했습니다~~(그러나 이모의 파이썬 슬랙 채널이 더 빠른 건 함정)~~.

일단 얼리버드 티켓을 구매하고, 몇가지 아름답고 역사에 남길만한 일을 겪은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 발표자 신청도 했고 이후에 자원봉사자 신청도 받는다는 알람소식을 듣고서 신청을 했습니다. 여튼 파이콘에서 참석해서 재미있게 놀 수 있다고 판단되는 모든 행사에 신청했습니다. 덕분에 올해는 발표자와 자원봉사자로 활동~~(티셔츠 덕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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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모임(8월 8일)에서 여차 저차해서 파이콘을 진행하는 Staff 분들과 숙소를 '쉐어'해서 같이 사용할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행사 전날인 12일(금요일) 오전에 부산에서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행사 전날에 일이 많아서 2시쯤에 일을 진행한다고 했으나 너무 더운 날씨 덕분에 지하철역까지 걸어감을 포기하고 환승없이 곧바로 강남까지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다 보니 코리안타임을 고려한 정각3시쯤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2시부터 겁나게 바쁠거라는 상상을 깨고 3시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했습니다. 바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빈둥거리며 앉아 있으니 견딜 수 없이 무료~~(free)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몇몇 자원봉사분들이 도착했고 어색한 인사를 나눴습니다괜히 어색함을 깨려고 해봐야 더 어색해질 뿐이기 때문에 조신히 앉아있었다~~.

나는 3시부터 6시까지 빈둥거려야 하는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에 아이패드에 준비해간 애덤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을 열심히 읽었고 덕분에 거의 절반을 읽은 것 같습니다. 뭔가 굉장히 느슨한 하루가 될 것 같아서 기쁜 마음으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물론 나만 널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 치킨과 피자가 도착하고 뭔가 큰빡센~~ 일이 시작될 것 같은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Name Wall'을 구경했습니다. 웬지 올해 진행되는 컨퍼런스에서 유행할 것 같은 느낌의 '디자인'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Name Wall에 적힌 참석자 이름이 정렬된 줄 알고 뒤에서 부터 찾았는데, Order(!) 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실상 인공지능인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ML기반 이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Name Wall'의 경우 Order 되지 않은 'Raw'한 느낌이 강렬하고 좋았습니다.

치킨과 피자 그리고 피자와 치킨을 먹고 6시가 넘어서 참석자들에게 나눠줄 가방에 들어갈 몇가지 물품을 담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주 힘들꺼라고 말씀하셨지만 대충 가방 1500개 정도를 만드는 일이라 그렇게 힘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치킨과 피자를 먹어서 일단 체력이 충분했고, 사람들이 많았고, 분업Thread Safe이 가능한 작업이라서 손 쉽게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원래 이런 단순노무는 힘들다 생각하면 끝없이 힘들지만 별거 아니라 생각하면 별로 안 힘든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방 1500개 정도를 만들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숙소에서 이런저런 만담을 잠시 나누고 잠시 눈을 감았는데 다음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짜쟌~~

1-Day

눈을 뜨고 샤워를 하고 택시 포탈을 통해서 공간 이동을 했습니다. 우리의 처음은 언제나 그렇듯이 '로그인'으로 시작됩니다. 참석자가 접수대로 와서 '티켓번호'나 '성함'을 보여주면 몇가지 쿠폰이 포함된 네임택을 되돌려줍니다. 해당 네임택에 포함된 쿠폰으로 파이콘 스티커, 스티커를 담은 가방, 한정판 티셔츠로 교환하는 일련의 프로세스로 진행됩니다.

우리의 역할은 관람객의 토큰을 확인하고 쿠폰을 포함한 네임택을 돌려주면 됩니다. 내가 할 작업은 '티켓번호'나 '성함'을 확인하고 네임택을 주는 역할입니다. 쿠폰 교환에 관련된 업무를 옆에서 다른 분들이 처리해 주셨습니다. 적절한 모듈화라 할 수 있습니다.

접수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많은 분들이 올꺼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상을 벗어나서 점심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로드 밸런스가 필요한 상황에서 적절한 자봉의 투입으로 무사히 해당 트래픽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오후에 발표가 있어서 발표 준비를 잠시했고 다시 접수대로 돌아가서 어슬렁 거리다가 급격하게 줄어든 트래픽 덕분에 약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열린 공간(O.S.T)에 어슬렁 거리면서 몇군데 참석했고, 이후 라이트닝 토크(L.T.)를 둘러봤습니다.

Staff 분들이 내일을 위해서 HP를 닭으로 채워주셨습니다. HP를 채우고 숙소에 들어와서 피로도도 같이 회복하였습니다. 맥주도 하나 사주셔서 MP도 덤으로 채웠습니습니다.

누워서 첫날에 있었던 일을 회고해 보니 접수에 관련된 부분에 자원 소모가 컸습니다. 접수라는게 특정 시간에 트래픽이 몰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를 적절하게 로드밸런싱하지 않으면 과도한 자봉소모가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봉의 의지를 담아서 일을 진행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거대한(!) 규모의 이벤트는 Staff분들꼐서 적절한 로드 밸런싱을 진행하는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발표는 평이한 주제를 다뤘기 떄문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스스로 자평하고 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을만한 발표도 아니였고, 필요하면 AS를 하면 된다는 아주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라이트닝 토크와 O.S.T의 경우 홍보만 잘 된다면 훨씬 유익한 세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뜨니 아침이네요.

2-Day

오늘은 택시 포탈을 탈 수 없었서, 코엑스 던전까지 걸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약간 늦게 도착했는데 접수대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전에는 접수대 부근에서 놀고 있었고, 간간히 O.S.T. 알림판 근처에 가서 스티커도 강제로 나눠드렸습니다.

오후에는 광란의 105호에서 발표를 들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맨 뒤에서 서서 듣게 되었다. 데이터분석 관련 세션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어서 깜놀했습니다(역시 데이터분석 분야가 핫플레이스인가 봅니다).

남는 시간엔 O.S.T.에 가서 어슬렁 거리면서 놀고 있었고 이 와중에서 카카오톡 부스 앞에서 '가위바위보' 이벤트를 하는 걸 잠시 구경했습니다. 작은 스타트업이 대형 플랫폼 프로바이더를 잘 사용하는 방법을 보여준 멋진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L.T.가 너무 흥해서 즐겁게 봤다. 역시 파이콘은 L.T.와 O.S.T.가 제일 재미있는 것 같다. 다른 컨퍼런스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함이네요.

저녁에는 최고급 부폐에서 HP와 MP를 채웠고, 2차에 가서 옛날의 찬란했던 로스트 테크놀러지인 'L.U.G', 'Sarang.net'와 'IRC'등에 대해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피로도 회복을 위해서 다시 숙소로 들어갔습니다. 많은 Staff분들의 노력과 자원봉사자의 열정적인 활동 덕분에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는 흐뭇한 생각을 하고 나니 또 아침이네요.

3-Day

장고도 잘 못하는 주제에 '장고 REST 프레임워크' 튜토리얼에 참석했습니다. 이것저것 따라하다 보니 그럴싸한 REST API 서버가 만들어졌습니다.

플라스크 사용자로서 좀 더 열심히 노력해서 내년에 플라스크 튜토리얼을 진행해 봐야겠다라고 생각하지만, 역시 튜토리얼에서 제일 어려운건 윈도우/Mac 사용자를 대상으로 pip install 시키는거라고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습니다.

이번 파이콘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장고를 좀 제대로 배워봐야 겠다!" 입니다. 기존에는 플라스크만 사용해서(사용자가 봐야할 화면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관계로!) 장고에 대한 내용을 잘 몰랐는데, 세션과 튜토리얼을 통해서 장고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End

PyCon APAC 2016 행사가 끝나고 텅빈 컨퍼런스 홀과 시작할 때 보다 더 많은 마무리를 해야할 Staff 분들에게 '미리' 큰 감사를 전하고, 좀 더 즐거운 파이콘을 즐기기 위해서 애썼던 자원봉사자 여러분들과 박수 세번 '짝짝짝' 하며 내년을 기약해 봅니다.

정적만이 남아있을 무대에 2017년 PyCon KR로 다시 뵙기를 기원하며, 조금 뒤 다시 웃으며 만나요!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적이 있나요. 음악소리도 분주히 돌아가던 세트도 이젠 다 멈춘채 무대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 샤프, 연극이 끝난 후